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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적 경험의 장소로서의 몸 그리고 흔적들

  이승훈 (사이미술연구소)




김영미 작가는 캔바스 작업으로부터 오브제 설치 영상 및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넘나들며 작업해오고 있는 작가이다. 사실 작가에게 있어서 장르의 구분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의 회화는 퍼포먼스의 결과물이며 영상작업은 이 과정을 기록한 것이고 오브제와 설치작업은 작업 과정에 필요한 공간을 구성하는 과정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미 작가는 캔바스 작업에서도 붓을 사용하지 않는다. 빗자루나 천 조각 등의 물체에 물감을 묻혀 던지거나 때리는 행위를 한 결과물을 사용하여 작업을 완성해 나간다. 작가의 작업에서 추상표현적 결과물들은 액션페인팅과 유사한 과정을 거쳐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잭슨 폴록의 액션페인팅에서 드리핑하는 과정이나 김영미 작가의 행위에 의한 작업에는 일정한 공통점이 보인다. 그것은 의식보다는 무의식과 연결된 작업을 하고 있다는 점이며 작업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몰입의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주의에서 보였던 자동기술법에 의한 작업들과도 일부 비교할 수 있는 지점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작업 방식은 작가가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와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성이나 의식작용에 의해 포착될 수 없는 세계를 직관적으로 경험해 왔고 그것을 표현하는데 있어서는 최대한 의식작용이 배제되어야 했고 한걸음 더 나아가 무의식 상태와 같은 몰입의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김영미 작가의 작업은 의식의 세계를 넘어서서 무의식의 경계 면을 넘나들면서 이성의 판단으로 경험할 수 없는 세계를 안내하고자 하는 것 같다. 그것은 그의 종교적 경험일 수도 있고 무의식 차원에서 만나게 되었던 원형적 감각과 같은 세계일 수도 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Be Born Again”이라는 명제를 그의 전시 주제로 제시하였다. 전시장에서는 벽면을 단위로 하여 ‘사람들의 모습들’로부터 ‘해지는 광경’을 거쳐 ‘불꽃 나무’ 그리고 ‘다시 태어나다’라는 작은 소주제의 작업들을 볼 수 있다. 작가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자신의 시선을 특정한 서사를 구성하여 시간이 흘러가듯 순차적으로 나열시키고 있다. 캔바스 작업뿐만 아니라 오브제 설치 등의 방식이 혼성적으로 표출되어 있는 전시장은 엄숙해 보일 정도로 정돈되어 있음에도 그의 작업 결과물마다 남겨진 흔적들에는 그가 몰입하여 행위를 하였던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물감이 던져지고 흔들거리고 파동치고 있는 현장은 장르적 구분이나 이론적 해석을 넘어선 초월적 경험의 순간에 대한 흔적이 되고 있다.
그런데 작업으로 완성된 그것은 단순히 물질적 ‘그것’이 아니라 의식의 차원을 넘어선 세계에서의 초월적 경험을 한 현장으로서의 ‘그곳’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작가가 바라보고 있는 세계는 단순히 물질로서의 ‘그것’으로는 표현될 수 없는 것이기에 그저 ‘그리기’에 머물러 있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대신 비물질적인 의식의 흐름으로부터 드러난 행위들이 일어났던 현장으로서의 ‘그곳’과 그 흔적들을 작업이라는 과정을 통해 모아두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작가가 말하는 “Be Born Again”은 이처럼 인간의 이성적 의식 세계에서 경험할 수 없는 초월적 경험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의 작업방식을 이해하게 되면 작가가 제안하는 것이 물질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비물질적인 질적 변화이자 초월적 변이에 대한 이야기임을 직감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작업을 보는 이들은 작가가 경험했던 세계로 그대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의 작업 맥락에 접근해 가면 그가 제시하는 세계가 어떠한 방향에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알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인간은 물질의 세계와 가시적 세계에 근거하여 그것을 경험하고 그에 따라 판단하게 된다. 그러나 김영미 작가는 비물질적 세계와 비가시적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두 세계의 간극은 사실 연결이 불가능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두 가지 세계 모두가 경험이 가능하고 그 경험은 자신에게 있어서는 모두 몸에서 일어난 일이므로 다시 몸으로부터 표현도 가능하다고 믿는 것 같다. 그래서 그는 몸을 움직이고 그 움직임의 흔적을 남겨놓고자 하는 것이다. 작가는 비물질적이고 비가시적인 초월적 경험을 하게 된 몸이라는 지점을 정점으로 하여 바로 그곳에서 경험의 순간을 절묘하게 뒤집어 냄으로써 그 경험을 가시 세계로 이를 끌어내고 물질의 세계에 끌어들여 이제 그것을 흔적으로 남겨놓고자 하는 것 같다. 이렇게 작가는 이 불가능해 보이는 두 세계의 연결지점으로서의 몸에 주목하고 여기에 몰입하여 그 흔적을 이 곳 전시장에 다시 흔적을 남기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보면 작가가 전시하고 있는 이 전시장이라는 곳은 어쩌면 ‘다시 태어남’이라는 초월적 경험의 현장이 될 수도 있을는지 모른다. 그가 몸으로 경험했던 흔적들을 의식의 경계를 넘어서서 감각하게 될 수 있을 수만 있다면…

A body as a place of transcendental experiences and its traces

  이승훈 (사이미술연구소)




Young-mi Kim has been not only working on canvas but also crossing over diverse genres through her objects, installations, films and performances works. In fact, a genre is not an important matter to the artist. This is because basically her painting is the result of her performance, her film is a record of it, and objects and installations are created in the process.
Kim does not even use a brush on her canvas works. Her canvas works are created with the results of actions throwing a broom or piece of fabric dipped in paint or hitting with them, which means that these abstract results of her practice came out after the similar process with action painting. In that sense, Jackson Pollack’s dripping in his action painting and Kim’s process have certain similarities; both of their practice is about unconsciousness rather than consciousness and inevitably has a time of deep immersion in the process. These are also the points that can be compared with certain of automatism in Dadaism or Surrealism.
The method of Kim’s practice is related to how the artist sees the world. The artist instinctively experiences the world that cannot be captured by one’s intellect or consciousness, and in order to express it, she has to exclude her consciousness as much as possible and furthermore needs a time of deep immersion paralleled to an unconscious state. Kim’s practice is like guiding to the world that cannot be experienced with intellectual judgments by going beyond the conscious world and crossing over the boundary of unconsciousness. This can be said as the result of religious experiences or the world of the original senses, experienced in an unconscious state.
The artist proposes “Born Again” for the title as well as the subject of the exhibition. There are groups of works hung under the sub-subjects on the walls of the exhibition space: ‘People’, ‘Sunset’, ‘Spark-tree’ and ‘Born Again’. Kim sequentially arranges them as time flows by composing a certain narrative from her viewpoint on the world and humans. Even though the exhibition place, composed of not only canvas works but also objects, installation and etc., is tidily put in order so that it almost looks solemn, traces in her works reveal how the artist was immersed once during the process of making them. The evidences of thrown, shaken and mixed paint are traces of moments when the artist had transcendental experiences beyond the genres or theoretical interpretation.
The results of her practice must be not just physical ‘things’ but ‘places’ where the artist has transcendental experiences beyond consciousness. This is because they are not just painting but records of ‘places’ where actions, revealed from the flow of immaterial consciousness, happen and the traces of them from the process of works instead. What the artist implies through ‘Born Again’ is related to transcendental experiences of humans that cannot be experienced in the world of rational consciousness. Therefore, her works cannot be said as something about the physical rebirth but qualitative or transcendental change if they are understood once. For example, the works do not allow audiences to enter the world that the artist experiences but tell a direction of the world that the artist suggests when audiences go closer to the context of the works.
Humans experience the world based on the material and visible worlds and make a decision from that experience. Kim is talking about the material and visible worlds in this exhibition. Although a gap between them seems to be not related each other, the artist seems to believe that both of the worlds can be experienced and expressed with a human body as they are experienced with a human body. Therefore, Kim tries to move her body and record traces of that movement, which means that the artist brings out her transcendental experiences to the visible world through her body where she has immaterial and invisible experiences and attempts to record them. In this way, a human body that can connect the two different worlds that seem to be impossible to connect becomes an important matter that the artist concentrates and an important medium leaving traces in the exhibition place. Perhaps the exhibition space itself can be a place where a transcendental experience is ‘born again’ if traces of her experiences are experienced by audiences beyond their consciousness.




김영미-감정과 마음을 지닌 천

  박영택 (경기대교수, 미술평론가)




김영미는 천을 이용해 회화, 입체 작업을 만든다. 주어진 캔버스로서의 화면이 아니라 일상의 천을 재료로 다룬다. 또한 정형화된 붓을 사용하지 않고 빗자루 등 일상의 물건을 매개로 물감을 얹힌다. 칠한다기보다는 던지고 뿌리고 흘린다. 자신의 신체가 중심이 되어 온몸으로 그린다. 작가는 캔버스 사각형의 틀에서 벗어난 천위에 여러 도구를 이용해 흔적을 남긴다. 붓을 사용하는 대신 다양한 도구들이 그 도구로부터 불가피하게 나오는 모종의 흔적을 천의 표면에 찍고 있다. 일종의 프로타쥬에 해당하는 기법이기도 하다. 다양한 색채를 지닌 물감이 뿌려지는가 하면 모종의 형상을 연상시키는 흔적이 어렴풋하게 떠오른다. 그것은 선명하고 명확한 형태도 아니고 손/붓에 의해 직접적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도 아니다. 우연적으로 만들어진 자취이자 즉흥적이고 다분히 무의식적인 행위의 결과물이다. 그로인해 화면은 모든 몸짓, 흔적을 받아주는 장소로 존재한다. 따라서 독특하게 얹혀진 물감의 상황이 그대로 그림이 된다.
작가는 가능한 자신의 내면에 깃든 그 무엇인가를 직접적으로 투사하거나 물질화하고자 한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방법론이 요구되었던 것 같다.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 천을 다양하게 다루고 붓을 대신해서 자신의 신체성을 직접적으로 표출 할 수 있는 매개를 이용해 화폭을 점유해가는 방식이자 화폭, 천 스스로 형상이 되고 존재가 되도록 한다. 이것은 이젤페인팅에서 벗어난 그림이자 작가의 신체가 직접적으로 화면 위로 발화하는 상항을 보여준다. 붓에 의존해 그림을 그린다면 그 붓의 방법론, 불가피한 붓질의 궤적에서 자유롭지 못한 반면 이 작업은 붓이 아닌 일상에서 구할 수 있는 다양한 도구들, 미술과 무관한 온갖 재료들을 동원해 화면에 자신의 흔적을, 도구의 존재성을 기록하고 있다. 몸짓으로, 생명력과 감정으로 넘치는 육체가 직접적으로 화면에 무엇인가를 남겨놓은 그림이다.

이처럼 작가는 천 안으로 밀고 들어가 찍고 뿌리고 던지는 행위를 통해 이미지를 남긴다. 그것은 색채와 점, 선, 얼룩과 번짐만으로 충만한 추상회화가 되었다. 그림을 그려나가는 순간의 작가의 행위, 신체의 기록인 동시에 그것들이 은연중 자연이미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작가의 심층의 기억 속에 자리한 이미지들이 불가피하게, 무의식적으로 몸을 내민 결과일 것이다. 아무래도 바닥에 펼쳐진 생지의 천을 앞에 둔 작가는 바닥과 일치된 천/화면을 대지 삼아 그 위에 파종하듯, 거닐 듯, 또는 여러 순간을 기억해내듯이 물감을 투사하고 이미지를 암암리에 남긴다. 그런데 작가의 작업은 밋밋한 평면의 천위에서 시술되기도 하지만 바느질과 겹침 등으로 굴곡진 표면위에서도 이루어진다. 이미 부조가 된 화면에 물감과 도구를 던져서 만든 자취들이 매력적인 그림을 만들어준다. 그것은 표면에 발생한 미묘한 굴곡, 띠와 천위에 얹혀진 물감의 자취들이 어우러져서 평면과 입체가 공존하는 회화가 되었다. 오려낸 천들이 서로 연결되어 평면을 이루어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경계선과 조각들이 모여서 화면을 만들고 있다. 천을 오리고 찢고 꿰매는가 하면 솜을 넣어 뭉쳐놓았다. 다양한 형태를 지닌 천이자 물감에 적셔지고 칠해져서 다채로운 표정을 지닌 천이 되었다. 그 천은 작가 자신의 신체, 마음. 기억과 소망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작은 조각들이 모여서 그 무엇인가를 표상하는데 그것은 삶의 조각이자 마음의 편린이고 시간의 흔적들이고 감정과 경험의 징표들이다.

천 작업이 적극적으로 전개된 경우는 표면에 부조의 이미지가 부풀어 오른 것들이다. 그것은 칠해진 천이 오브제가 되어 공간에 자존한다. 꽃, 커다란 눈물, 십자가, 해골, 입술 등의 형상이 만들어졌다. 다분히 사랑(욕망), 희생, 죽음, 제의, 그리고 고통 등과 연관된 이미지다. 표면위에서 부풀어 오른 것도 있고 덩어리로서의 천이 공간에, 벽에 자존하는 것도 있다. 나로서는 비정형의 천이, 염색되듯 물감의 흔적을 피부에 두른 천이 얽혀서 다소 기이한 형태를 만들고 있는 작업들이 흥미로웠다. 표정이 많은 천이자 거칠고 원초적이면서도 다분히 공격적인 힘이 느껴졌다. 그것들은 평면에 부착되어 있는 것보다 공간에 던져질 때 더 힘이 있다. 부드럽고 유연한 천들이 공간에 자리하는 순간 입체, 조각이 되고 물리적인 형상이 되었다. 평면의 천이 아니라 3차원의 존재가 된 것이다. 더구나 천의 피부가 풍부한 색, 다양한 자취를 머금으면서 이미지를 상실하지 않고 있다.
조각은 구체적인 물질을 공간에 세워두는 일이다. 그것은 부피와 질량을 지닌 특정 물질을 가지고 텅 빈 공간을 채우는 일이자 세계로 들어간 그 물질이 중력의 법칙과 시간의 지배를 받으며 자존하는 일을 목도하게 만드는 의도적인 장치라고도 말할 수 있다. 본래 조각은 주술성을 지닌 것들이었다. 반면 현대조각은 그 주술성을 벗어던진다. 이제 조각은 신이나 위인의 불멸할 몸이 아니라 그저 돌이나 나무, 청동이란 물질에 불과하다고 여겨진다. 또한 일상적인 삶의 공간과 무관한 장소가 아니라 생생한 삶의 현장 안으로 스스럼없이 개입하고 스며들도록 허용된다. 조각적 재료 역시 견고하고 영속적인 물질만이 아니라 부드럽고 연약한 재료나 가변적이고 일시적인 재료도 기꺼이 사용된다. 동시에 기존의 건물이나 특정 공간에 잠시 서식하다가 사라지기를 거듭하기도 한다. 당연히 좌대는 사라진다. 이른바 ‘설치’라는 것이 바로 그러한 작업 방식이다. 오늘날 조각의 물질적 속성, 즉 공간 속에 존재하는 형태로서의 현존성은 가장 타당성이 희박한 조각의 특성이 되었다. 형태나 장소, 재료 등은 일시적이거나 잠정적인 것으로 보여 지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는 다른 측면에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되고 있다. ‘무엇’이 아닌 ‘왜’에 흥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특정 조각 작품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공간에 왜, 어떻게 놓이고 간섭하며 시선의 주목을, 감정의 파문을, 의식의 혼란을 야기하고 '사건'을 일으키는 일이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조각 작업은 “우리의 감수성에 최대한의 갈등”을 일으키고자 한다. 또한 전통적이며 경질의 조각적 재료가 갖는 영구성을 대신해서 갖가지 재료들이 다채롭게 활용되며 그 재료 역시 가변적이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변화해 가도록 조율되어 있다. 그러한 작품들은 대부분은 무엇보다도 소멸되어 간다는 점에서 생명의 주기를 닮고 있다. 또한 일시적이고 우연적으로, 인연이 되어 특정한 공간에 기생하면서 일정한 시간을 머물다 전시가 끝나면 사라지는 것이다. 이렇듯 기념비적인 것, 지속적인 것이 아니라 일시적이고 우연적인 것, 공간 전체로 물질이 개입되는 설치, 연극적인 요소로 무대를 만들어나가는 듯 등이 동시대 조각의 한 성격이 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성격이 김영미의 천으로 만든 입체작업에서도 부분적으로 검출된다. 작가는 부드럽고 가변적인 천을 활용해 그것을 자신의 마음, 감정을 지닌 물체로 변형해 특정한 존재로 가설했다. 그것이 작가의 감정과 경험의 전정한 결과물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생명력을 지닌 천, 정서와 영감을 감직한 천이 생동하는 그런 작업이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새로운 존재로 환생하는 그런 천을 구현하고자 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작가는 그렇게 창조자가 되고자 한다.

Youngmi Kim – Fabric that has a Heart and Feelings

  Yeongtaek Park (Kyonggi University Professor, art critic)




Youngmi Kim creates paintings and three-dimensional works from fabric. She uses fabric not as a canvas, but as an everyday object. Other utilitarian materials are incorporated into the making of her work, such the substitution of a broom as a painting tool instead of a brush. Because of this, her working process has more spilling and scattering than typical painting, with Kim’s body becoming the center of the process. The artist’s various tools leave traces on the cloth that is not confined to the square frame. Instead of using a brush, she lets the marks inevitably created by her tools in the process intact on the fabric, becoming a kind of frottage technique. While paints of various colors are scattered, subtle traces reminiscent of certain shapes emerge. The shapes are neither sharp nor clear; it is also not an image that is directly formed by the artist’s hand or brush work. It is a trace produced by chance and a byproduct of improvisation—subconscious acts of the artist. Because of this, the painting surface exists as a place that embraces every gesture and trace. Therefore the way the paints sit on the fabric becomes a picture.
As long as allowed, the artist tries to directly project or materialize something inside of herself. This is how her work has come to entail such a methodology. Liberating herself from a frame, she freely handles flexible cloth in various ways. The artist allows the fabric to become a shape on its own by using unconventional art materials instead of traditional brushes, which directly manifests the bodiliness of herself.
This demonstrates her non-easel painting, in which the artist’s bodily action is directly reflected on the picture. When relying on a brush, an artist tends to be confined to the inevitable trajectory of brush work. However Youngmi Kim’s work, with various tools found in her daily life and non-art materials, records her traces as well as the trace (a sense of existence) of the tools. This is a painting in which a body, full of vitality and emotions, left evidence as a gesture.
In this way, the artist forces her way through the fabric with paint that is spilled, scattered, and thrown, leaving images on the surface. Only with the colors, dots, lines, and spills did it become rich abstract painting. The actions of the artist in her paintings is a record of the body, and at the same time reminiscent of a natural image. Perhaps this is because images in the recesses of the artist’s mind unavoidably rose to the surface when she faced the untouched fabric and splashed it with paint, leaving images behind. The fabric placed parallel with the ground is treated as earth on which to sow, stroll, and remember certain moments. While her work is practiced mostly on flat fabric, she also creates work on uneven surfaces of stitched or layered cloth as well. The marks applied to the surface with paints and tools create intriguing images. It becomes a painting where two-dimensional and three-dimensional space coexist through delicate curves and traces and stripes of paint on the fabric. Naturally formed seams and spaces and cut fabric are connected together, creating surfaces that compose a picture. She cuts out, tears up, and sews the fabric, or puts a wad of cotton into it. The pieces in various shapes, by means of the soaking and painting process, became a fabric that has a thousand faces. And the fabric becomes a medium that represents the artist’s body, mind, memory, and wishes. Little fragments gathered that represent something—it is a fragment of life, a glimpse of the mind, a trace of time, and signs of emotions and experiences.
Relief-like images are inflated when the fabric work is actively processed. Those images become objects, existing in space. Shapes of flowers, tears, crosses, skeletons, and lips are formed. They are all related to the idea of sacrifice, death, suggestion, and pain. These clothes are either inflated on top of surface, existing in the space as objects, or stuck on the wall. To me, I am interested in the fact that these are atypical creations, wearing steins of paints as if they had been dyed and forming eccentric shapes as they are entangled together. I found various expressions in these pieces and felt something very primitive in them—something like assertive nature. They seem to gain more vitality when thrown into space as opposed to being displayed on a flat surface. When the soft and flexible fabrics land on the ground, they become a three-dimensional object—sculpture and physical shape. They transformed from a two-dimensional cloth into a three-dimensional being. As if that is not enough, the skin of the fabric absorbs rich colors and various residues, forming images.
To sculpt is to construct materials in space. It is an intended device that fills up an empty space, and one that makes the viewer witness how the material with a volume (mass) exists on its own under the rules of gravity and time in space. Originally sculpture possessed a magical power. On the other hand, modern sculpture ditched the idea of magical power. Today’s sculpture no longer represents the bodies of gods or heroes but is instead considered to be mere materials such as rock, tree, or bronze. It is allowed to fall into the realm of the everyday life, into space that is not totally alienated from real life.
Sculptural materials can be not only permanent substances, but soft and fragile, or transitory and ephemeral elements. They can temporarily stay at a specific site and then disappear. A pedestal of course vanishes too. So called installation is such a way of creating art. In contemporary sculpture, physicality, or being able to exist in space, is the least relevant quality of sculpture. Form, space, and materials are perceived as temporal or tentative concepts, and because of this we must ask why rather than what when viewing contemporary sculpture. Today we are more concerned with why and how something is situated in a certain space, how it interrupts the space, catches attention, stirs up emotion, and confuses the viewer’s mind more so than with the sculpture itself. It has become an event. So contemporary sculpture attempts to induce the maximum degree of conflict in our sentimentality. In the place of traditional ever-lasting materials, other diverse materials are employed, and these materials are also constantly adjusted as time passes by. These works resemble a life cycle in a sense that they disappear as well. They temporally and coincidentally happen to stay at a certain space for a certain period of time then vanish at the end of the exhibition. As discussed, momentary and coincidental rather than monumental and lasting installation work that intervenes the whole space is a characteristic of contemporary sculpture. These very elements are observed in Youngmi Kim’s three-dimensional fabric work. The artist using soft and flexible materials and transforms them into a certain object that contains her sentiments and mind. The work is meant as a true product of the artist’s emotions and experiences. It is a work, in which fabric that possesses vitality, sentiments, and inspirations becomes vibrant with life. The artist envisions and realizes such cloth while pouring everything she had into the effort. This is the way in which she becomes a creator.